제동장치의

수만 명의 목숨을 구한 ABS의 역사

이번 시간에는 앞 시간에 이어서 제동 장치의 열네 번째 시간으로 브레이크 전자제어 ABS 시스템의 역사에 대하여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전자제어 시스템으로 브레이크에 ABS가 사용된 지 2018년으로 꼭 40년이 되었다. <이미지 출처: 네이버>

 

자동차에 달려 있는 장비들 중 교통사고를 줄이는 데에 가장 큰 공을 세운 장치를 꼽으라면, 단연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ABS(Anti-lock Braking System, 안티-록 브레이킹 시스템). 안전벨트와 에어백이 사고 발생 후의 피해를 줄이는 '사후적/수동적 안전'의 영역이라면, ABS는 능동적으로 사고를 회피할 수 있는 '사전적/능동적 안전'의 개념을 창시하는 데에 기여했다.

앞서 말했듯 2018년은 최초의 현대적인 전자식 ABS가 상용화된 지 40년이 되는 해다. 요즘에야 ABS는 물론 전자식 자세 제어 장치까지 법적으로 의무 장착하도록 돼 있지만, 과거의 자동차는 그렇지 않았다. 지난 40년간 운전자들의 안전을 책임져 온 ABS의 역사를 되짚어보자.

1. ABS는 비행기와 기차에 쓰였던 장치였다.

브레이크 록업이 발생하면 차량의 제어가 쉽지 않다. F1 레이스 카는 규정 상 ABS를 장착할 수 없다. <이미지 출처: 네이버>

 

빠른 속도에서 강한 제동 시 바퀴가 잠겨버리는 브레이크 록업(brake lock-up)은 바퀴 달린 모든 탈것을 만드는 공학자들의 골칫거리였다. 바퀴가 잠겨버리면 제동거리가 늘어날 뿐 아니라 바퀴의 타이어가 비정상적으로 마모되고, 방향을 제어할 수 없게 된다. 때문에 바퀴가 잠기지 않고 제동하기 위해 ABS의 개발이 시작됐다.

ABS의 시작은 철도와 항공 분야에서 개발됐다. 1930년대, 독일과 프랑스의 공학자들이 급제동 시에도 바퀴가 미끄러지지 않는 안티-슬립 시스템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1928년 독일의 카를 베셀, 1933년 로버트 보쉬가 안티-슬립 시스템의 특허를 출원했지만 이들은 양산에 이르지는 못했다.

영국 공군의 애브로 벌칸(Avro Vulcan) 폭격기는 맥사렛 ABS가 처음 탑재된 비행기 중 하나다. <이미지 출처: 네이버>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영국의 던롭이 '맥사렛(Maxaret)'이라는 슬립 방지 시스템을 상용화했다. 이 시스템은 주로 영국 공군의 군용기에 탑재돼 비행기의 제동력을 최대 30% 개선하는 효과를 보였다. 착륙 시 제동력이 개선된 덕에 군용기들은 15% 더 많은 화물이나 무기를 싣고도 이륙할 수 있게 됐다. 이 시스템은 공군은 물론 민수용 비행기에도 빠르게 확산됐고, 이후 오토바이나 자동차에도 탑재되기 시작했다.

원리는 간단했다. 브레이크 록업을 인지하면 브레이크를 놓았다 밟는 동작을 빠르게 반복하는 것이다. 1초에 십수 회에 걸쳐 브레이크를 반복적으로 작동시키면 록업으로 인한 미끄러짐을 줄여 안정적으로 최적화된 제동 성능을 낼 수 있게 된다.

1968년 초호화 여객기 콩코드에 처음 탑재된 전자제어식 ABS가 자동차에 도입되는 데에는 10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이미지 출처: 네이버>

 

이후 항공기에는 ABS가 보편화됐는데, 50~60년대 ABS는 전자제어가 아닌, 기계적으로 연속 제동하도록 만들어진 시스템이었다. 센서로 바퀴 회전수를 인식해 브레이크를 제어하는 전자제어식 ABS는 영국과 프랑스가 합작으로 개발한 초음속 여객기 '콩코드(Concorde)'에 처음으로 탑재됐다. 당시로선 일반 비행기에는 장착할 엄두도 내지 못할 만큼 고가의 시스템이었지만, 콩코드가 최첨단 초호화 여객기였기에 장착이 가능했다.

2. 벤츠, 최초의 전자식 ABS를 만들다.

1960년대 말부터 영국과 미국 업체들을 중심으로 ABS가 부분적으로 자동차에 탑재되기 시작했다. 젠센 FF, 포드 조디악, 크라이슬러 임페리얼 등이 초창기 ABS가 장착된 차들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두 바퀴에만 ABS가 적용되거나 3-채널 방식(앞바퀴는 좌우 따로 제어하지만 뒷바퀴는 하나의 유압 시스템으로 제어하는 방식)에 그쳤다.

통제된 활주로에 착륙하는 비행기나 정해진 선로를 달리는 기차라면 기본적인 ABS만으로도 안정적인 제동이 가능하지만, 자동차는 훨씬 정밀한 ABS가 필요했다. 매 순간 달리는 도로의 노면 환경이 바뀔 뿐 아니라 돌발 상황에 반응해 재빠르게 대처할 수 없다면 사고를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ABS를 테스트 중인 W116 S-클래스. ABS가 없는 아래의 차는 바퀴가 잠긴 뒤 정처 없이 미끄러지고 있다. <이미지 출처: 네이버>

 

이러한 기존 ABS의 한계를 인식한 메르세데스-벤츠는 진작부터 네 바퀴를 완전히 독립 제어할 수 있는 전자식 ABS 개발에 나섰다. 1953년 급제동 시의 바퀴 록 방지 시스템의 특허를 낸 것을 시작으로 1963년 세계 최초의 전자-유압식 브레이크 제어 시스템을 상용화했고, 1966년부터는 후일 보쉬에 인수합병된 텔딕스(Teldix) 사와 함께 가장 안전한 브레이크 개발을 속행했다.

벤츠는 4개의 바퀴에 각각 센서를 장착하고, 디지털 제어 시스템이 이를 통해 네 바퀴를 독립 제어하는 세계 최초의 디지털 전자식 멀티채널 ABS를 개발해냈다. 오늘날 보편화된 2세대 ABS가 만들어진 것이다. 이 시스템은 1978S-클래스(W116)에 처음 탑재되면서 현대적인 ABS의 시대를 열었고, 시대가 지나면서 오늘날에는 800만 원짜리 모닝부터 8억 원짜리 롤스로이스까지 모든 차에 의무 장착되기에 이른다. 다마스와 라보에는 아직 안 달려있다.

3. ABS, 제동을 넘어 능동 안전 시스템으로

ABS의 핵심은 제동거리 감소보단 통제력 유지다. <이미지 출처: 네이버>

 

ABS는 탄생 이래로 전 세계 수백만, 수천만 운전자들을 돌발 상황으로부터 지켜냈다. ABS의 핵심은 '돌발 상황에도 제어를 잃지 않는 것'이다. 사실 브레이크 록업이 발생한다고 해서 제동거리가 크게 늘어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바퀴가 잠겨버린 상태에서는 타이어의 횡력(lateral force)이 급격히 낮아지면서 운전대를 틀어도 조향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

현대적인 ABS는 각 바퀴에 장착된 휠 스피드 센서가 바퀴의 회전수를 모니터링한다. 제동 시 바퀴의 회전수가 비정상적으로 빠르게 감소하면 이를 록업 또는 록업 가능성이 있는 상황으로 인식하고, 1초에 수십 회 브레이크를 놓았다 밟는 동작을 반복한다. 그 결과 바퀴가 잡기지 않고 꾸준히 횡력을 유지하고, 급제동 시에도 조향을 통한 회피주행이 가능해진 것이다.

4. 전자제어가 발달하면서 ABSTCS, ESP 등으로 진화하고 있다.

첨단 전자제어 기술이 빠르게 발달하면서 80년대 말~90년대 초에는 ABS가 진화를 거듭한다. 제동뿐 아니라 가속 시의 휠 스핀을 제어하는 트랙션 컨트롤 시스템(TCS)이 개발되고, 더 나아가 조향각 센서와 자이로 센서를 결합해 비정상적인 언더스티어나 오버스티어 상황에 ABS가 개입해 사고를 예방하는 전자식 자세 제어 시스템(ESP)도 만들어졌다. 이 전자식 자세 제어 시스템은 회사에 따라 ESC, VDC, DSC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데, 오늘날에는 이 역시 보편적인 의무 안전 장비로 자리 잡았다.

안전뿐 아니라 더 짜릿한 운전을 즐기기 위해서도 ABS가 활용된다. 전자식 자세 제어 시스템에서 더 나아간 브레이크 기반 토크 벡터링 시스템이 그것이다. 토크 벡터링(torque vectoring)이란 좌우 바퀴의 구동력을 독립 제어해 코너링 성능을 향상시키는 기능인데, 최근에는 브레이크로 바퀴 회전수를 제어해 토크 벡터링 효과를 발휘하는 전자제어 시스템도 여러 차에 탑재되고 있다.

운전 중에 계기판에 ABS 경고등이 들어오면 당장 가까운 서비스센터로 가야 한다. <이미지 출처: 네이버>

 

앞으로 ABS가 또 어떤 변신을 할지는 알 수 없지만, 확실한 건 지난 40년간 그래왔듯 앞으로도 운전자들의 안전을 책임진다는 것이다. 요즘처럼 추운 겨울에는 타이어의 접지력이 떨어져 조금만 세게 제동해도 ABS가 쉽게 작동하기 때문에 ABS에 문제가 발생해 경고등이 들어오면 반드시 점검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ABS가 만능은 아니다. 가장 안전한 제동 법은 ABS가 작동하기 전, 안전거리를 충분히 확보하고 천천히 제동하는 것이다. 우리를 지켜주는 든든한 ABS가 있지만, 언제나 사고를 피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안전한 운전습관이라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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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으로 이번 시간에는 제동 장치 열네 번째 시간으로 제동(브레이크) 장치 중에서 브레이크 전자제어 ABS 시스템의 역사에 대하여 간단하게 알아봤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제동장치 열다섯 번째 시간으로 제동 장치 전자제어 ABS 시스템의 실체에 대하여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포스팅이 여러분들의 자동차 제동 장치의 이해로 자동차 관리에 도움 되어 안전운전으로 쾌적한 자동차 생활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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